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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괴물과 싸우려면 괴물이 되어야 하는 시대

오피니언

2018. 7. 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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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정치인 故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며…

정치자금법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바꾸자


니체는 괴물과 싸울 때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괴물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하는데, 그걸 추구하다 보면 자신이 경계하던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기 쉬운 까닭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으면 이기기는커녕 싸우지조차 못하는 모양이다. 결국 괴물이 되지 못한 노회찬 의원은 스러졌다.

지난 23일, 故 노회찬 의원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일생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의 마지막은 결국 눈물투성이다. <사진=뉴시스>

지난 23, 노회찬 의원(63, 정의당)이 세상을 떠났다. 사망 경위는 투신자살이다. 그는 최근 드루킹[각주:1] 사건과 관련하여 불법정치자금 의혹을 받고 있었다. 2016년에 드루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5천만 원을 받았다는 게 대략적인 의혹 내용이다. 그는 유서에 2016년에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지 않고 4천만 원 가량의 후원금을 받았으나, 일체의 청탁이나 대가는 없었다고 남겼다. 본인의 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가 받던 의혹 일부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법 제6[각주:2]에 따르면, 후원회지정권자(국회의원)가 지정한 하나의 후원회로부터만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자금을 전달했다는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는 지정후원회가 아니므로, 해당 조항 위반이다.


그의 죽음이 드루킹이나 특검을 주장한 정치인들의 탓은 아니다. 물론 그들은 탐탁지 않지만, 노회찬 의원의 길에 흠결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의도를 떠나 그 흠결은 밝혀지는 게 옳다. 문제는 그 흠결의 크기에 비해 대가가 너무도 가혹하다는 점이다.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뇌물도 아니거니와, 고작 4천만 원이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지만, 정치판에서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지금 구속수사 중인 지난 정권 대통령들이 받는 혐의에 비하면 노회찬 의원을 죽음으로 몰고 간 돈은 조족지혈이다. 예컨대 며칠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구형된 벌금의 3천분의 1에 불과하다.

 

그가 처벌과 사회적 지탄이 두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리 없다. 굳세게 살아왔던 그가 무너진 건 자신에게 묻은 얼룩을 견디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가 투신하기 전, 창틀을 붙잡을 때의 심정을 감히 짐작조차 못하겠다. 평생 정의를 위해 살아온 그가 잠시나마 불가피했던 순간을 스스로 참지 못했다. 우리 모두 이해해줄 수 있는데, 혼자 이해 못했다. 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여린 사람을 우리는 홀로 두었고, 충분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여러모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둘의 죽음은 다소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노무현들을 지켜야 했다. 자신을 버리라고 했으나 그러지 않은 그들을 위해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는 독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노회찬 의원은 평생 사람들 눈물을 닦아준 하얀 손수건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얼룩이 묻자 더 이상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그에게 얼룩이 묻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얼룩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비교섭단체이다. 작년 대선 이후 조금씩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형편이다. 국회의사당 내에서 매번 의석수 꼴찌를 담당하는 정당이다. 매 국회 5명 안팎의 의원을 배출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대개 심상정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처럼 개인 인지도에 의존하는 편이다. 정치자금은 크게 ▲당비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으로 나뉘는데, 지지율이 낮으면 자금도 당연히 적다. 비교섭단체에 국가보조금이 많을 리 만무하고, 세력도 작고 경제력도 없는 정당에 당원이 적으니 당비도 적다. 의지할 건 후원금뿐인데, 현행법상 후원금으로는 많은 자금을 충당할 수 없다. 기껏해야 연간 중앙당에 50억 원, 국회의원 한 명당 15천만 원이다.[각주:3]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건 정당의 능력이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정당은 국민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에, 도태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정의당을 마냥 무능하다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에게 공정한 과정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정치 행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쇼맨십이든 정책연구든 법안 발의든, 많이 해야 유권자 눈에 띄고 환심을 얻는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작은 정당은 돈이 없다. 우리 세대를 마음 아프게 하는 수저론이 정당들 사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역전이 불가능한 구조다.

 

시스템이 잘못됐다. 정치자금법을 바꿔야 한다. 작은 정당이 돈이 많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정당 소속 당원이 돈이 아주 많거나, 후원금을 많이 받아야 한다. 현행법은 후원금을 한정해버리니, 전자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돈 많은 사람만 정치를 할 수 있거나, 정당이 돈 많은 사람을 모시기 위해 부자들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놓거나.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현 정치자금법이 그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동아리비부터 정치자금까지 모든 돈의 사용은 세 가지 과정을 가진다. 수입, 지출, 운용이다. 가령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용돈 만 원을 받는다면, 그건 수입이다. 그리고 그걸로 오천 원짜리 햄버거를 사 먹는다면, 그건 지출이다. 햄버거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먹을지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운용이다. 정치자금법에서 운용은 당연히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남의 돈을 사용하는 만큼, 본래의 취지에 맞게 사용되는지 소상히 알릴 필요가 있다.

 

문제는 수입 관련이다. 대한민국 정치자금법은 후원금 연간모금한도액을 규정한다. 이 한도가 앞서 지적한 문제를 야기한다. 불합리한 규제가 정치자금의 민주화를 역행하는 셈이다.[각주:4] 정치 후원은 사회구성원들의 정치효능감을 높이고,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각주:5] 미국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선거기간 때 이익집단들의 막대한 후원과 기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건 한 개인이나 집단이 전부 후원하는 게 아니다. 미국도 개인 기부자와 집단(Political Action Committee, PAC)에 정치자금기부한도를 규제한다. 다만, 정치인이 받을 모금한도액을 규제하지 않는다. 지지‧후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치인은 많은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자금을 기반으로 더 많은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확장성을 부여하는 정치자금제도는 정치를 훨씬 더 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현행법에도 나름의 정당성은 있을 것이다. 금권정치 방지이다. 모금액에 한도를 두지 않으면 부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압도적인 정치자금을 확보할 것이므로, 국민들의 정치적 발언 평등을 헤칠 염려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단순히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에, 빈부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정치 선호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전히 우려는 남는다. 미국 선거기간 때마다 슈퍼 PAC이 항상 화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기부한도는 엄격히 규제하되, 연간모금한도액은 늘려야 한다. 작은 정당도 충분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원활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란다.

토마스 제퍼슨이 남긴 말.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먹을까. 갈 길이 멀다.

이런 비정상적 시스템 속에서 노회찬 의원은 괴물들과 용감하게 싸웠다. 여린 사람들을 위해서 이 악물고 싸웠던 이유는 자신이 여렸기 때문일까. 싸우던 도중 거울을 봤을 때, 혹시 그가 괴물의 잔상을 보지나 않았을지 걱정된다. 본인이 괴물이 되어버렸다며 얼마나 자책했을지 생각하면 두렵다. 꼭 말해주고 싶다. 노회찬 의원은 훌륭한 용사였다고. 엉망진창인 창과 방패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괴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노회찬 의원은 사랑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뜻을 힘껏 펼치기가 힘들어 얼룩을 묻혔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 역설적인 상황의 원인이 정치자금법의 불합리뿐이지는 않겠으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탓 중에 가장 합리적인 탓이다. 우리는 정치자금법을 포함해서 바꿔야 할 게 산더미이기 때문에 차례대로 하나씩 해내야 한다. 오래 슬퍼할 수 없기에 딱 49일만 슬퍼하겠다. 요즘 이슈가 되는 작품 <신과 함께>에는 착하게 산 망자가 49일 동안 재판을 받고 환생한다는 내용이 있다. 노회찬 의원이 다시 대한민국에 돌아왔으면 좋겠다. 맑은 영혼의 아기로 돌아와서, 40년 뒤 다시 정치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건강한 사회 속에서 당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정신과 사명, 미안함까지. 남은 건 우리의 몫이다.

 

최원석 기자 janus1210@dgist.ac.kr

<<기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간 오피니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최근 선거법 위반 혐의로 특검 조사를 받고 있는 댓글조작사건 주범의 필명 [본문으로]
  2. 정치자금법 제6조. 후원회지정권자는 각각 하나의 후원회를 지정하여 둘 수 있다. [본문으로]
  3. 정치자금법 제12조. 후원회가 연간 모금할 수 있는 한도액은 각 호와 같다. 1) 중앙당후원회는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후원회가 모금한 후원금을 합하여 50억원 2) 국회의원, 국회의원 후보자등 및 당대표경선후보자등의 후원회는 각각 1억5천만원 [본문으로]
  4. 엄기홍 (2007). 한국의 정치자금법과 선거. 한국민주시민교육학회 세미나, 65-94. [본문으로]
  5. 김영래. (1992). 한국의 정치자금 제도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제26권. 113-14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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