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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거리가 된 그들, 유럽의 집시

사회

2015. 9. 1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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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에 대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응





“Give me a money please.” 8살 남짓해 보이는 남자아이가 눈앞에서 종이컵을 흔들며 말한다. 무시하고 야경을 찍으려 카메라를 드니 카메라 렌즈를 종이컵으로 장난스레 가리며 계속 돈을 구걸한다. 지금은 현금이 없다는 단호한 말을 듣고 나서야 남자아이는 레스토랑의 다른 손님들에게로 뛰어갔다. 어린 나이에도 영어로 구걸하는 일이 능숙해 보였던 그 아이는 집시다. 유럽의 유명 관광지나 성당 근처엔 흔히 집시가 있다. 필자는 파리 센 강 다리에서 ‘집시 사인단’을 처음 보았다. 떼를 지어 관광객에게 자연스레 돈을 요구하는 그들은 혹시나 해코지라도 당할까 두려워하며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비꼬는 어투로 ‘Hello~?’라고 말하며 웃고 있었다. 동네 성당에서도 사람들의 기도가 끝난 틈을 타 집시들은 당당하게 컵을 내밀며 구걸하고 있었다. 분명 집시는 유랑민일 텐데 그들은 어쩌다 유럽에 정착해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일반적으로 집시란 서아시아와 동유럽에 주로 거주하는 인도아리아계의 유랑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을 가리키는 정확한 명칭은 ‘롬족’이지만 본 기사 내용에선 좀 더 일반적인 표현인 ‘집시’를 사용하기로 한다) 이 민족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 한데 그래도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들이 11세기에 박해와 탄압을 피해 인도 북부에서 이주해 온 유랑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과 더불어 나라 없이 오래 살아온 민족이지만 부유하고 사회적 입지가 확고한 지금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현재 박해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집시’가 가진 이미지들은 부정적이다. 관광객들에겐 조심해야 할 소매치기, 현지인들에겐 더러운 거지, 정치인들에겐 자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들로 생각될 뿐이다. 이러한 집시의 이미지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에서는 집시 여자 에스메랄다를 ‘진짜 집시가 아닌 아기 때 집시들에게 유괴당해 그들 사이에서 자란 프랑스인’으로 묘사함으로써 아기도 유괴해가는 집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실제로 우리가 유럽에서 보게 되는 집시의 모습도 긍정적이지 않은데 이들이 구걸이나 소매치기로 생계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체코에서는 집시의 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그들에게 주택을 주고 거주권을 주었으나 이 집시들은 오히려 주택에 있는 가정용품들을 팔아버리고 겨울이면 춥다며 체코인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집시들은 아주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집시에겐 제대로 살아보려는 의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지가 있는 집시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국제 집시 연맹(IRU)이다. 전 세계 집시 대표들이 모여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국가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영토가 있는 단체가 아니므로 큰 영향력은 없다.

스페인의 경우 체코와 비슷하게 집시 포용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집시를 국민으로 받아들이고 1975년부터 시민권도 부여했다. 또한, 취직과 교육이 불가했던 집시들에게 집과 의료, 교육 같은 여러 사회적 혜택을 주었고 그 덕분에 스페인 내 집시들의 생활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다. 가령 집시들의 빈민가 거주율은 1978년 78%에서 2010년 16%로 낮아졌고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집시들도 많아졌다. 집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문맹률도 15%가량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변화를 위해 스페인 정부는 매년 약 560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스페인 거주 집시의 수는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약 97만 명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스페인 정부의 정책은 전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Viviane Reding의 말을 빌리면 “스페인 정부는 집시 인구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유럽연합이사회가 집계한 프랑스 내 집시의 수는 40만 명인데 비해 2015년 프랑스 정부가 집계한 프랑스 내 집시의 수는 약 2만 명으로 2년간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는 지난 10년간 집시촌을 계속 철거하고 추방된 이민자의 지문을 채취해 재입국을 막는 등 프랑스의 강경한 집시 추방 정책의 탓으로 보인다. 이러한 프랑스의 정책은 몇몇 인권단체들과 EU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2010년 9월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는 프랑스의 집시추방 정책에 대해 “프랑스가 역내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EU 지침을 위반했다.”며 “10월 15일까지 프랑스 국내법 편입 일정을 통보하지 않으면 공식적인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에 프랑스 외무부는 10월 15일에 “집시추방과 관련해 EU 집행위원회가 요구한 정보들을 즉각 발송할 것이며 관련 지침을 국내법 조항에 포함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집시 추방 정책을 포기한 듯 보였다. 하지만 2015년에 이른 지금 프랑스는 다시 집시 추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례로 지난 8월 27일에는 가장 크고 오래된 집시촌 중 하나를 완전히 철거했다. Seine-Saint-Denis 지역 사무총장인 Hugues Besancenot는 그 곳에 살던 집시들 중 60여 명의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 노약자들에게는 집을 구하기 위한 지원금을, 다른 집시들을 위해선 임시 거처를 위한 상담 전화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집시촌에서 지난 4년간 거주했던 Brindus Dan은 “프랑스 정부는 우릴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위한 장소는 없다고 말한다.”며 프랑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집시는 오랜 기간 동안 핍박과 차별을 받았고 그런 핍박과 차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예로 지난 8월 25일 프랑스 집시촌에서는 총격이 일어나 경찰 1명과 집시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잡힌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는 집시에 대한 원한이었다. 이것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만들어낸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故) 체코 대통령 Vaclav Havel은 1995년 희생된 집시들을 기념하기 위한 제막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시의 역사는 우리와는 관련 없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역사이며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집시의 역사는 인정되어야만 하고 이해되어야 하며,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집시가 핍박 받았던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집시라는 민족에 대해 강제 추방이 아닌 그들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서연 기자 (wltjdus0208@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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