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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FGLP 특집기사 – 어린 시절 꿈을 찾아서, 윌슨산 천문대 (2) - 후커 망원경 앞에서 ‘나’를 발견하다

문화

2025. 3. 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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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FGLP 특집기사 - 어린 시절 꿈을 찾아서, 윌슨산 천문대 >

1) 꿈을 찾아 떠난 11.3km의 여정 - 윌슨산 등산기

2부후커 망원경 앞에서 ‘나’를 발견하다 - 천문대 탐방기

이 기사는 < 2024 FGLP 특집기사 - 어린 시절 꿈을 찾아서, 윌슨산 천문대 > 2후커 망원경 앞에서 를 발견하다입니다.

 

윌슨산 천문대는 천문학도에게 예루살렘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현대 천문학이 탄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윌슨산 천문대는 탄생부터 범상치 않았다. 당시 세계 최대 구경(망원경 렌즈의 지름)의 굴절 망원경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던 구경 덕후조지 E. 헤일은 제작 과정에서 굴절망원경의 한계를 실감하고 차기 망원경 프로젝트를 반사망원경 방식으로 계획했다. 타고난 입담으로 유명했던 그는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반사망원경 방식의 60인치 대구경 망원경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카네기 재단의 후원을 끌어냈고, 안정된 대기를 가진 LA 근교의 윌슨산 정상을 차세대 망원경의 보금자리로 선정하였다. 그렇게 1904년 윌슨산 천문대는 문을 열게 된다.

자신이 제안한 차세대 망원경 프로젝트가 곧바로 실현되자 헤일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망원경을 꿈꾸었다. 결국 60인치 망원경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LA의 금속부품상 존 후커의 지원을 받아 60인치 망원경 바로 옆 부지에 당시 세계 최대 구경보다 무려 28인치나 큰 100인치 망원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후일 헤일의 동생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박사'라고 칭할 정도로 헤일은 도전적이었고 망원경 건설에 진심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큰 구경에만 집착하였던 헤일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지만, 결국 60인치 망원경은 1908년에, 100인치 망원경은 1917년에 각각 성공적으로 제작되었다. 후원자의 이름을 딴 100인치 후커망원경은 완성된 해인 1917년부터, 헤일의 유작인 팔로마산 천문대의 200인치 망원경이 만들어진 1949년까지 무려 32년 동안 세계 최대 망원경 타이틀을 유지했다. 최장 타이틀 홀더인 만큼 여기서 나온 학문적 성취 또한 어마어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성과는 바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허블 법칙에 대한 관측상 증거의 발견일 것이다.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좌)과 그가 발견한 허블 법칙을 나타내는 그래프(우). 그래프를 통해 천체의 거리에 따라 멀어지는 속도(후퇴 속도)가 비례하여 커짐을 알 수 있다. < 사진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처럼 엄청난 곳을 잠시 발도장만을 찍고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천문대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가이드 투어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산을 오른 것은 팁 아닌 팁이라 할 수 있겠다. 윌슨산 천문대가 아직까지 실제로 사용중인 연구시설임에도 어떻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는 세계 최대 구경의 망원경을 보유한 천문대였던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뒤로한 채, 현재는 아마추어 천문학의 보금자리로 재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천문대 가이드 투어가 하절기 주말(, ) 오전 11 30, 오후 1, 하루에 두 번 제공되고 있다. 온라인 투어 예약은 불가능하며, 코스믹 카페 뒤 기념품 가판대에서만 가이드 투어 티켓을 현장 판매하고 있다. 투어 요금은 성인 15달러, 노약자 13달러이다. 투어는 천문학 관련 업계에서 종사했던 시니어 자원봉사자분들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 이외에도 여러 관광지와 문화유산에서 미국 시니어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회 참여의 창구를 열어주는 형태로 노인들을 존중하는 문화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듯했다.

코스믹 카페 뒤편 가판대. 이곳에서 천문대 관련 기념품이나 가이드 투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사진 = 노경민 기자>

 

나는 도착시간에 맞추어 2번째 회차인 1시 투어에 참여하였다. 투어에 참가하면 먼저 가이드 투어 집결지(가판대 앞)에서부터 천문대 입구까지 이동한 후 간단히 천문대 역사에 대해 소개받는 시간을 가진다. 천문대 역사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2020밥캣(Bobcat)” 산불에 의해 윌슨산 천문대가 홀랑 타버릴 뻔했다는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그마치 천문대 앞 150m까지 산불이 도달했다고 하는데, 하마터면 버킷리스트를 영영 완성하지 못 할 뻔했다는 사실에 아찔했다. 산불로부터 천문대를 지켜주신 소방관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밥캣 산불의 상흔. 천문대 앞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느끼게 해준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입구를 지나 천문대 역사 전시관을 잠시 들른 후, 윌슨산 천문대의 태양 망원경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감이 좋은 독자라면 이미 천문대의 설립 연도(1904) 60인치 망원경 가동년(1908)이 꽤 차이 난다는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는 천문대의 첫 망원경이 60인치 망원경이 아닌 스노우 태양 망원경(Snow Solar Telescope)이었기 때문이다. 윌슨산 천문대는 윌슨산 태양 관측소(Mount Wilson Solar Observatory)로 먼저 문을 열었고, 60인치 망원경이 완성된 후 1919년까지도 이 이름을 고수했다.

 

스노우 태양 망원경 구경에 앞서, 먼저 150피트 태양망원경 시설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태양 망원경에서 150피트( 46미터)라 함은 일반 망원경의 숫자가 구경을 나타내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초점거리, 즉 탑의 높이를 나타낸다. 실제 탑의 높이는 그것보다 조금 높은 176피트( 54m)라고 한다. 시설 안에서는 탑 꼭대기에 있는 거울과 렌즈에서 모인 빛이 투영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연구시설로 운영되는 동안은 투영된 태양의 상을 직접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매일 흑점 관측 데이터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특기할 점으로, 이 망원경은 후커 망원경보다 더 오랜 기간 최대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1912년 완성된 후 1962년 매스-피어스 태양 망원경(McMath-Pierce Solar telescope)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무려 50년 동안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현재는 UCLA에 사용권이 양도되어 천문학과 학생들의 태양 연구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54m 높이의 150피트 태양 망원경의 탑(좌)과 건물 내부에 위치한 태양 투영판(우). 자원봉사자분께서 투영된 태양에 나타난 흑점을 가리키고 있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이후 천문대의 모태가 된 스노우 태양 망원경 시설 안에서 간단한 태양 스펙트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직접 태양 스펙트럼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태양 관측 장비는 일식 관측을 위해 이동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최초의 영구 고정식 태양 망원경이었던 스노우 태양 망원경은 고정식에서 오는 장점인 큰 크기를 이용해 당시 최고 수준의 태양 스펙트럼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돔이 닫혀있을 때엔 시설 곳곳에 슨 녹과 먼지가 태양 관측의 최전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영광을 누리던 스노우 태양 망원경에게 세월의 흐름은 이길 수 없다고 타이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돔이 열리자 이내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빛을 아름다운 무지갯빛 스펙트럼으로 분해시키며 스노우 망원경은 아직 영광스러운 그 시절을 잊지 못했음을, 이미 흘러버린 시간을 부정하고 있었다.

스노우 태양 망원경의 내부 주경 < 사진 = 노경민 기자 >

 

망원경 하나에 세월의 흐름이란이라는 심오한 질문을 곱씹으며 도착한 장소는 60인치 망원경이었다.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망원경의 가장 자랑스러운 타이틀은 다름 아닌 세계 최대 구경이다. 그런 면에서 이 60인치 망원경은 이미 1845년에 제작된 72인치 레비아탄 망원경에 못 미친 비운의 망원경이라고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60인치 망원경은 금속에서 유리로 바뀐 새로운 거울 제작 방식과 추적 정밀도가 비약적으로 개선된 마운트를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관측 자료를 제공하여 천문사에 한 획을 그은 망원경이었다. 때로 남을 특정 잣대로만 평가하곤 하는 우리 인간에게, 60인치 망원경의 생은 성공한 삶에 관한 화두를 던져준다. 과연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너는 성공한 망원경이니?라는 질문에 60인치 망원경은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60 인치 망원경 < 사진 = 노경민 기자 >

 

60인치 망원경 돔을 나와 100인치 후커 망원경으로 가는 길에 1m 망원경을 Y자 형태로 6개 배치해 만든 광학 간섭계인 차라 어레이(CHARA array)를 마주할 수 있다. 진공관을 통해 서로 다른 망원경에서 얻어진 빛을 합성하면 330m짜리 대구경 망원경의 분해능(최대로 분해할 수 있는 각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정직하게 330m의 망원경을 만들지 않았으니, 얍삽한 편법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하지 않나. 2003년에 완공된 차라 어레이는 2007년 외계 행성의 지름을 직접 관측을 통해 최초로 알아내는 쾌거를 거두었고, 2013년에는 태양 외 별의 흑점 영상을 최초로 촬영하는 성과를 얻었다.

차라 어레이를 구성하는 망원경의 일부 < 사진 = 노경민 기자 >

 

차라 어레이를 지나면 드디어 그 유명한 ‘Bridge to the stars’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는 100인치 돔의 입구와 이어지는 평범한 다리로 남을뻔 했지만, 아인슈타인이 우주상수라는 인생 최대의 실수를 참회하기 위해 윌슨산 천문대를 직접 방문, 허블과 함께 100인치 후커 망원경의 돔을 배경으로 바로 이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 다리 또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십년 뒤, 미지의 암흑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우주 상수는 다시 부활하였다.)

1931년 허블과 아인슈타인이 만나 ‘Bridge to the stars’ 다리에 서서 후커 망원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좌)과 방문 당시 모습(우). < 사진 (좌) = New York Public Library 제공, (우) = 노경민 기자 >

 

자신이 만든 완벽한 중력 방정식을 다소 인간적인 고정관념 때문에 스스로 파괴해버린 아인슈타인의 후회를 뒤로 하고 다리를 건너면 고대하던 100인치 후커 망원경의 돔을 마주하게 된다. 돔 내부의 입구에선 허블이 사용했던 관측용 의자와 당시 망원경에 사용된 접안부가 탐방객에게 환영 인사를 건넨다.

천문학 서적에서만 봤던 허블이 사용했던 장비들을 직접 마주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함께 밤을 새며 동고동락하던 주인을 잊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왜인지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 사진 = 노경민 기자 >

허블의 자취를 뒤로한 채 계단을 오르면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위용을 뽐내는 후커 망원경을 실제로 볼 수 있다. 100인치(2.54m)의 크기가 주는 위상에 압도되어 내 몸에는 그저 전율만이 흘렀다. 망원경 주변에는 천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VAR!’ 사진이다. 192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천문학계에서는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이고 안드로메다은하는 그저 하나의 성운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허블은 이 사진에 표기되어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해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여 천문학의 패러다임을 180도 바꿔놓았다. 그 거리는 무려 90만 광년(현재 측정값인 230만 광년하고는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이라는 천문학적 단위의 거리였기 때문이다. 결국 안드로메다는 우리은하 외부의 또 다른 은하임이 밝혀졌고, 허블은 더 나아가 멀리 있는 은하가 더 빨리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하며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법칙을 발표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허블의 법칙이다.

100 인치 후커 망원경 < 사진 = 노경민 기자 >
허블의 ‘VAR!’ 사진과 컬러로 촬영된 안드로메다은하(M31)의 사진이다. ‘VAR!’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N’을 썼다가 지우고 그 아래 ‘VAR!’로 표기해 놓았는데, 이는 허블이 처음에는 신성(Nova)인 줄 착각했다 이내 거리를 추정할 수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임을 깨닫고는 ‘VAR’에 느낌표를 달아놓은 것이다. <사진 (좌) = Courtesy Carnegie Institution for Science 제공, (우) = 노경민 기자>

이렇게만 보면 내가 천문학자가 꿈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현재는 천문학자를 꿈꾸고 있지 않다. 단지 학창 시절의 꿈이었을 뿐이다. 그 시절 천문학자를 꿈꾸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느꼈던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은 천문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내 마음속 오리온자리는 빛을 잃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윌슨산 천문대를 향해 오르며, 천문대에서 허블의 자취를 느끼며 내 가슴은 왜인지 마구 뛰었다. 꿈에 그리던 후커 망원경 앞에서, 나는 하늘의 별에 설레일 줄 아는 16살의 순수한 소년을 마주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마음속 한편에는 아직 오리온자리가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갈수록 진로 결정에 있어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을 자주 따지게 된 나를 일깨우며, 윌슨산 천문대는 내가 과학을 왜 공부 하고자 했는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초심을 선물해 주었다. 이 글을 읽는 FGLP 참여 예정자들에게 남들이 추천하는 유명 관광명소만 찾아다니기보다는 앞으로 인생의 이정표가 될지도 모를, ’를 찾아 떠나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내가 밤하늘을 좋아하는 이유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내일 별을 봐도, 내년에 별을 봐도, 30년 뒤에 별을 봐도 오리온자리는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 것이다.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도 별과 닮았다. 비록 천문학의 최전선에서 맡은 임무는 종료되었지만, 윌슨산 천문대는 그 자리를 지키며 밤하늘을 사랑하는 방문객과 함께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노경민 기자 nomin@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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