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스트신문 DNA 기자들이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OO일기’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본 ‘OO일기’는 지난 2020년 배현주 전 편집장이 원내 익명성에 대해 고찰한 ‘꼰대 일기’ 칼럼에 영감을 받은 후배 기자들이 선배의 뜻을 이어받아 비정기적으로 ‘일기’ 칼럼들을 발행하며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디지스트신문 DNA는 사소하고 즐거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주제까지, 취재 현장 안팎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고 넓은 범위로 기자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때로는 가벼운 농담 거리를, 때로는 진지한 토론 거리를 던질 ‘OO일기 시리즈’가 우리 학생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일기 시리즈 돌아보기
1. [꼰대일기]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2. [수습기자 일기] 편집장님 방 털기 (DGIST 학생생활관, 과연 안전한가?)
3. [군대일기] 깨달음이 없는 나라도 깨달은 이의 태도를 훔칠 순 있으니까
4. [편집장 일기]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 (전학대회, 선거시행세칙 개정 뒷이야기)
5. [부편집장 일기]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다녀오고
6. [권대현 편집장의 ‘자유’일기] 샤프펜슬과 전열기구를 금지하는 사회,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가
7. [이상아 기자의 ‘평범’일기] 당신도 순간 악해질 수 있습니다
필자는 교환학생으로 잠시 서울에 머문 적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바로 버스였다. 사람이 터질 듯 채워진 등교 버스는 승객이 타고 내리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떤 날은 사람이 문틈에 끼어 있는데도 버스가 출발했고, 몇몇 기사들은 오히려 문틈에 끼어 잠시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사람이 ‘지각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눈치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버스에 타고 있는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 필자의 화를 잘 들어주는 몇몇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불평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버스 기사들 역시 버스를 정시에 정거장에 도착하도록 운전하지 않으면, 직장에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직장의 압박을 받는다는 이유로, 승객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던 그 순간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들도 자신의 직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필자도 상황과 사회가 주는 압박을 받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몇몇 기사들을 찾아보니, 이미 서울 내에서 버스 정시운행에 대한 여럿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었다. 서울시가 배차간격을 기준으로 버스회사를 평가하고, 해당 기준이 엄격하여 단순 1, 2점 차이로 평가 순위가 바뀐다고 한다. 버스 기사는 배차 간격이 늦어지지 않도록 칼같이 버스를 운행해야 하며, 배차간격을 맞추지 못할 경우 회사에 불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험한 순간들이 단지 ‘직장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만 치부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선택은 누군가의 안전을 담보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 안에 놓인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었다. 아무리 구조의 문제라 해도, 그 안에서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멈추고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결코 버스 기사 전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만났던 서울의 버스기사가 몇명이나 되겠는가. 사실 승객의 안전을 제일 고민하는 기사가 더 많다. 일부 버스 기사에게는 이 글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분명 누구도 승객을 다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며,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과 규칙 속에서 많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이라는 감각을 놓기 어렵다. 필자도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몸담는 이 사회가, 구체적으로는 버스 기사들의 근무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구조 안에 있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누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최소한 한 번쯤은 돌아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버스 기사에 대한 생각은 단지 본인이 직접 겪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누구나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타인을 상처 입힐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살았던 저명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은, 부당한 권위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권위에 동조되어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귀하도 이 글을 적고 있는 본인도 언젠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위치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계를 위한 선택과 타인을 위한 책임 사이 갈등일 수도 있고, 말없이 강요 받는 기준과 분위기 속에서 느끼는 압박일 수도 있다.
그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위로하는 스스로를 발견하지 않길 바란다.
이상아 기자 sa053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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