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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연구원 해보고 대학원 포기…" 고갈된 학부생의 현주소

사회

2022. 8. 2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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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생 연구원이 직면한 초과근무, 그리고 일부 실험실의 권력관계 

 

DGIST 기초학부는 2019 9월부터 학부생이 원하는 분야의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왔다. 개인적으로 교수와 연락하여 합의한 학생은 학기 중 최대 20만원, 방학 중 최대 50만원으로 계약하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90명 내외의 학생이 학부생 연구과제(이하 학부연)에 참여하고 있으며, 참여 학생들 역시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꾸준히 지목되는 몇 가지 제도상의 허점과 일부 실험실의 인권 문제 탓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학부생 연구원 제도 속 문제: 피하기 힘든 초과근무와 낮은 인건비

 

-학기 중-

오늘은 9시 수업이 있는 날이다. 기숙사를 나가니 운 좋게도 알파카 한 대가 남아 있어 지각을 면했다. 12시에 김밥천국에서 점심을 먹고 실험실에 출근했다. 우리 실험실은 피자를 연구한다. 오늘은 페퍼로니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하와이안 피자 연구실에서 온 메일에 회신하고 최근 페퍼로니 논문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연구실 선배가 오늘은 일찍 가고 나중에 저녁에 와서 확인하라고 했다. 저녁 교양수업을 듣고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은 뒤에는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뻗어버렸다. 과제 해야 하는데... 휴대폰을 보니 학부연 월급이 입금되었다. 학부연 학기 중 월급은 20만원, 세금을 제하면 18만원, 학생생활지원금 32만원까지 합하면 총 50만원이다. 학부연은 초과 근무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한 달 식비만 고려해도 50만원 한달살이는 빠듯하다.

아직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조별 과제를 위해 노트북을 들고 해동창의마루로 갔다. 조별과제를 하다 보니 벌써 11시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에 실험실에 페퍼로니를 확인하러 갔다. 페퍼로니를 꺼내서 확인한 후 뒤집어서 오븐에 넣었다. 언제까지 페퍼로니를 구워야 할까. 피자를 좋아했기에, 관심이 많았기에, 더 배우고 싶기에 큰 불만은 없다. 그래서 주 8시간의 제한에도 추가로 남아서 실험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원으로의 진학에 대한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단순한 페퍼로니를 굽는 작업이 반복되는 것이 지루하여 회의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이 연구의 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의 사진 < 사진 = unsplash 제공 >

 

-방학 중-

오늘은 저널클럽 발표가 있는 금요일이다. 일주일 내내 실험과 저널클럽 준비를 병행하며 밤을 새웠더니 몽롱하다. 9시에 연구실에 도착해 사수 선배에게 저널 클럽 피드백을 받았다. 피드백을 토대로 저널 클럽 준비를 마치니까 벌써 1시가 됐다. 이제 저널 클럽이다. 교수님과 선배들의 피자치즈에 대한 호기심 담긴 질문에 겨우 답변하고 저널 클럽을 끝냈더니, 저널 클럽을 핑계로 미뤄 두었던 피자들이 보인다. 9 to 6인 우리 연구실에선 어떤 날은 일없이 무료하게 6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니, 그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면서 실험을 하던 나는 결국 실험이 길어져 8시가 되어서야 퇴근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저널 클럽에서 다룬 논문을 우리 팀 실험에 적용해보기로 했는데, 시료를 너무 오래 방치하면 안 되므로 당장 내일도 출근해서 프로토콜을 구상하고 예비 실험을 해야 한다. 20시간을 넘긴 9 to 6 생활이나 주말 출근을 하다 보면 이 생활이 맞나 의문이 들다가, 어차피 대학원 가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넘기게 된다.

 

DGIST의 한 학부생 연구원 A씨의 일과이다. 실제 학부생 연구원들의 경험을 수집하여 각색한 것으로, DGIST 내에서 이와 유사한 일상을 보내는 학부생 연구원 지인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학부연에서 많이 회자되는 문제는 단연 근무 시간과 급여 문제이다. 2019 9월 학부생 연구과제 참여가 공식적으로 허용되기 이전, 학생 및 교수로 구성된 합의체가 학생 보호 제도의 일환으로 학기 중 20% ▲방학 중 50%의 참여율 상한을 정했다. 이에 따라 근무 시간은 주 40시간 근무 제도에 근거하여 8시간과 20시간으로 정해졌다. DGIST가 학생연구자 지원규정에 따라 학부생의 100% 참여에 대한 인건비를 월 100만원으로 규정함에 따라, 학부생은 학기 중 최대 20만 원 방학 중 최대 50만 원의 인건비를 수령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하여 학기 중과 방학 중의 학부연 급여는 각각 20만원과 5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이를 시간 당 수당으로 계산하면 약 6,250원으로,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정부출연기관의 장은 다음 각 호에 따른 금액 이상으로 학위과정별 학생인건비(4대보험의 기관부담금 및 퇴직급여충당금은 제외한다) 계상기준을 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학과, 연구부서, 연구책임자 등에 따라 별도의 기준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1. 학사과정(전문학사과정을 포함한다) : 월 1,000,000원
2. 석사과정 : 월 1,800,000원
3. 박사과정 : 월 2,500,000원
4. 통합과정 :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기준을 고려하여 연구개발기관의 장이 별도로 정한 금액

-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 기준 제40조 제3항

 

그러나 이런 규정들은 학생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질의 경험과 배움을 얻기 위해, 학부생 연구원들은 불가피하게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은 없다. 학부생은 제한 시간 이상 일할 수 없게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초과 근무가 서류 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보상도 없는 것이다. 일반 직장인에 빗대어 보자. 1주일 남은 프로젝트를 위해 밤을 새워 추가 근무를 한 직장인이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사원 보호를 위해 초과 근무를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인건비를 지급해주지 않았다. 이처럼 학부연의 초과 근무는 학생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과잉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아 학습권과 노동권을 동시에 침해할 수 있다.

학부생 연구원 경험 조사 인터뷰에 응한 7명의 학생 중 대부분의 학생이 학부연 근무 시간 제한은 현장에서 잘 지켜질 수 없다고 답했다. 실험실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대부분 시간 제한을 초과하여 근무하고 있었다. 사실상 무의미한 보호 제도인 것이다. 급여에 관해서는 입장이 사뭇 갈렸다. 학부연을 통해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고려하면 적당하다는 의견과 급여가 오르면 다른 학생들의 참여 기회가 줄어들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간당 수당과 최근 물가 상승률, 그리고 학부연의 특성상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힘들다는 점들을 고려했을 때 많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학교 측의 참여율 제한은 학부생의 과잉 참여를 막기 위함이다. 이는 학부생 연구원 허가 당시 학생 및 교수 협의체가 동의한 것이다. 그 이상의 업무가 아무리 실험 상황을 고려한 것또는 학생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학생에게 주어진 안전 장치를 무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허울뿐인 안전 장치를 건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여율 제한이 부당하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는 안전장치는 개선이 필요하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학생의 연구 의지와 실험 상황을 고려하여 초과근무 한도를 융통성 있게 규정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더하여 주기적으로 학생의 연구 환경을 모니터링하여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현 제도가 지속된다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고 초과 근무가 당연시되는 일명 열정 페이의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학교 차원의 경계가 필요하다.

 

인격 모독, 실험실 내부의 문제

 

방학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피자 연구가 시작되었다. 봄학기 동안 있어본 결과, 우리 실험실은 쉽게 교수님께 무언가를 건의할 수 없는 분위기로 보였다. 문제가 생겨 보고하면 항상 학생의 탓으로 돌리시고 해결에는 도움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번 방학에 연구실에서 큰 맘 먹고 토핑 배합기를 들였다. 가루 형태의 기본 재료만 넣어두면 신선한 토핑을 만들어 올려주는 신기술의 집약체다. 비싼 기기다 보니 사용 매뉴얼 교육에서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하고 메모했고, 우리는 꾸준히 이 기계를 사용했다. 그런데 배운 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원하지 않는 토핑이 생성되어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랩미팅에서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당황스러웠다. 잘 안 돌아가면 매뉴얼 파일을 샅샅이 찾아보고 문제를 시정해야지, 랩미팅에까지 이 문제를 가져오냐는 호통이었다. 교수님은 이 말을 시작으로, 요즘 애들은 노력을 안 하고 편한 길만 찾는다며 문제를 언급한 모두를 비난하기 시작하셨다. 이미 매뉴얼을 확인하고 같이 궁리해본 후였다고 항변해봤지만 교수님의 언성이 높아질 뿐이었다. A/S를 문의하거나 다시 한번 교육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가기도 전에 문제 제기부터 막히다니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피자 연구를 해야 할까 회의감이 들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 < 사진 = unsplash 제공 >

 

윗글 역시 실제 사례를 각색한 이야기이다.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러한 폭언은 일부 실험실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며, 조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021 KAIST 대학원에서 실시한 인권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185명의 대학원생 중 6.0%의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폭언을 경험한 적 있으며, 그 중 민원 기관 및 학과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1.4% 밖에 되지 않았다. 75%의 학생이 무대응을 일관했으며 12.5%는 당사자와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폭언에 노출되어도 마땅한 해결할 방법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 제일 큰 문제다.

 

‘비난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인격 모독은 일 효율도 높이지 못하고 상대에게 피해만 입히는 일거양실의 행위다. 그럼에도 인격 모독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배경에는 이공계 대학원 실험실의 구조가 있다. 이공계 대학 실험실은 실험실의 책임자, 대체로 교수의 권력이 가히 절대적이다. 실험실 안에는 연차 순으로 박사 후 연구원, 박사, 석사 및 파견 연구원 등이 있고 추가로 학부생 연구원이 있다. 그 중 석박사과정생은 학위 논문을 평가받아 졸업하는데, 이때 지도교수의 승인이 있어야만 졸업할 수 있다. 또 졸업 후에 학위는 수행한 연구로 평가받기에 지도교수의 흥망성쇠는 곧 자신의 흥망성쇠이기도 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를 함부로 문제삼기도 쉽지 않다. 학교와 학과 차원에서도 실험실 내의 소통 문제에까지 간섭하기는 어렵다.

학부생 연구원들도 석박사들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졸업에 대한 강박은 없지만, 사회경험이 부족한 학부생은 더욱 쉽게 인권 침해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또한 기초학부에 재학중인 신분이기에 대학원에서도 대학원생처럼 지원해주지 않고, 기초학부에서도 지원 프로그램 사업이 아니라는 명목 하에 관리 외의 부가적인 지원은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권 침해를 당해도 실험실을 나와버리는 선택지밖에 없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교수 및 사수와 같은 상사의 자발적인 존중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의 적극적인 공감과 학과 차원에서의 능동적인 감시, 그리고 학생들이 인권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상담 및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 개선이 긴요하다.

인권 문제는 뉴스 속의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DGIST 구성원 모두가 직면한 이야기이며, DGIST 학부생이라면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실험실 또한 인권 문제의 사각지대가 될 수는 없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라는 말로 부당한 대우를 포장할 수는 없다. 흔하게 일어나는 학부생 연구 과잉 참여나 실험실 속에서의 인격 모독 사례를 학교 구성원이 인지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분위기 및 제도의 형성이 절실하다. 학생들도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최소한의 존중하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김오민 기자 omin.kim@dgist.ac.kr

손혜림 기자 hr2516s@dgist.ac.kr

서휘 기자 tjgnl81@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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