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 반박할 수 없는 고학번 꼰대 기자가 DNA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칼럼으로 풀어냅니다. 어쩔 수 없는 잔소리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DNA 기자들은 매주 편집회의를 통해 기사 거리나 기사 진행 과정에 대해 공유한다. 한 학기가 14주이니, 거의 3개월이 넘는 시간을 기사 관련된 생각을 하며 살게 된다. 그런 기자들에게도 학기 중에 주어지는 공식 휴가기간이 있다. 바로 시험기간이다. 시험 주와 그 전 주를 포함해서 약 2주는 기자들의 공식적인 휴가다. 물론, 신문이라는 매체 특성상 기자들이 꾸준하게 기사를 쓰면 좋겠지만, 원고료도 없이 열정 하나로 일하는 기자들에게 성적까지 헌납하라는 건 양심이 없는 사람라도 한 번은 뜨끔할 일이다.

내가 편집장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수인계를 받은 지는 5개월 째였지만, 공식적으로 편집장 직함을 단지는 2개월 남짓한 때였다. 기자들에게 시험 모두 잘 치라는 말과 함께 2주 뒤에 있을 편집회의에서 보자고 인사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부장이 되고 처음으로 기자들에게 2주간의 휴가를 준 그 시기는 바야흐로, 박근혜씨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거리던 때와 겹쳤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관련 기사를 써야하는 것 아닌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시험기간이라는 부담 때문에 누구 하나를 지목하기도 누가 하나 발벗고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의 DNA 같으면, 시험도 몇 개 보지 않는 고학년 기자가 오피니언 한 개 정도 쓸 수 있겠지만, 그때 DNA 기자들은 1, 2학년이 전부였다.

사안의 시급함, 편집장으로서의 욕심보다는 기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 “우리 시험 끝나고 열심히 해요라는 말로 기자들을 달랜 것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DNA 뭐함?’이라는 제목의 익명 글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속상했을 지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시 학내에는 DGful이라는 학생 웹 커뮤니티가 있었고, 여러 게시판 중 하나인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요지는 학내 신문이라고 요란하게 홍보할 때는 언제고, 뭐하는지 요즘 보이지도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나중에 제대로 된 기사를 쓰는 것이 훨씬 우아한 대처였겠지만, 나는 그렇게 우아한 사람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부장 배현주입니다. 저희 시험기간이라 잠깐 쉬었는데 이런 글 달려서 좀 그렇네요. 그리고 우리 블로그에서 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만약 그것도 제대로 안 보고 이런 말 하는 거면 좀 별로네요.’ 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달았다. 물론, 훨씬 점잖은 말투로 썼다. 글쓴이가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댓글을 달았으니 답글이 달리길 기다렸다. 그런데 글쓴이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DNA 열심히 하는 거 알아요. 파이팅 하세요’, ‘꼭 관심도 없는 애들이 남 일하는데 트집잡는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위로가 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바란 답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한 달 가까이 글을 찾아서 글쓴이로부터 답글이 달렸는지 확인을 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익명을 안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쌍방향으로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가장 싫어한다. 대화는 두 명이상의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는 말과 오는 말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향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런데 익명은, 가는 말이 있어도 오는 말이 없는 경우가 있고, 존중의 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익명의 누군가는 익명이라는 그림자 뒤에 쉽게 사라질 수 있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를 직접 마주하지(마주할 대;) 않는다는 점에서 익명 논의는 이미 대화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도 사람이고, 그 글을 읽는 것도 사람인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글을 쓰다 보면 자꾸 그 사실을 잊게 된다.

SNS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짧은 글과 말에 익숙해졌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것 만으로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말과 글의 파괴력을 간과하게 되었다. 말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은, 요즘말로 하면 댓글 하나에 사람이 죽는다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화면을 앞에 두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익명을 통해 책임도 지지 않게 되면 그 글은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를 바가 없다.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라는 말장난이 유행하며, 사람들은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건 쉽게 까먹는다.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화면을 들여다보는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기 전에 한 번씩 되뇌여야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배현주 기자 bhjoo55@dgist.ac.kr

 

Posted by dgist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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